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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연재소설 [길 끝에서 꽃을 줍다 17회]

2026-10-31 02:31 | 입력 :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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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잠시 방문에 기대앉아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날아들었다. 여느 때의 곰팡내가 아니었다.

우명은 느닷없는 냄새에 허둥대면서 부들거리며 부엌으로 문을 열어젖혔다. 마치 우명을 밖으로 끌어내 줄 무엇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부엌 아궁이에서, 노란색 알루미늄 냄비가 타고 있었다.
냄비는 검어지다 못해 벌겋게 달아있었다. 냄비 뚜껑에 달린 까만 손잡이는 어느새 녹아내려서 뚜껑에 넙적하게 눌러붙은 채 악취를 뿜으며 풀풀 연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쌉쌀하고도 쾡한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우명은 어질어질한 머리를 흔들어 신발을 찾았다. 굽 낮은 하얀 샌들이 가지런히 방문 앞에 놓여있었다.

우명은 뒤쫓는 누군가로부터 달아나듯 허겁지겁 샌들을 발에 끼었다. 금세 하얀 샌들이 긴 끈으로 우명의 발목에 칭칭 감긴 채 얌전히 우명의 발에 매달렸다.

우명은 머리가 엉긴 키 큰 나무들의 검은 그늘을 지나 드문드문 금이 간 시멘트 마당을 건넜다.

다리가 꺾이는 것인지 아니면 마당의 패인 흙바닥으로 빠져드는 것인지 모르게 한 걸음 한 걸음이 움푹움푹 아래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마당은 길고도 길었다. 넓고도 넓었다. 가도 가도 대문이 나타나지 않았다. 우명은 마치 도깨비에 홀려 제자리 걸음을 도는 것처럼 세상이 아득하기만 했다.

평소 지나던 마당의 열 배쯤도 더 걸어서 작은 사각문 앞에 다다랐다.

우명은 빨리 그 작은 사각문을 빠져 나와야 했다. 한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건너는 단 하나의 문 인양, 지금 거기를 빠져나오지 않으면 다시는 그 문을 건널 기회가 없을 것만 같았다.

우명은 있는 힘을 다해 뒤 돌아보지 않고 안간힘으로 문을 빠져 나왔다. 그리곤 자신의 그림자가 채 끌려나오기도 전에 서둘러 페인트가 나무껍질처럼 부슬부슬 벗겨지고 있는 철제대문을 닫았다.

찰카닥, 잠금쇠의 소리가 세상을 흔들 것처럼 크게 울려퍼졌다.

이제 됐어. 이제 떨거나 숨죽이지 않아도 돼. 이제 거길 빠져 나온 거야. 우명은 자신을 다독였다. 이제 괜찮아.

“어? 우명씨.”

몇 걸음쯤 앞으로 나갔을 때였다. 누군가 우명을 불렀다. 하지만 소리만 들릴 뿐 우명의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누구세요?”

입을 벌리고 소리를 냈지만 아무 소리도 입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았다. 마치 꿈을 꾸고있는 것 같았다. 가위에 눌려, 말을 해도 말이 되지 않고 움직이려 해도 움직여지지 않던 꿈.

“허탕쳤구나? 나도 한참 벨 누르다가 오락실에서 놀다 오는 길인데 녀석, 어디 멀리 갔나? 해기랑 약속, 안 하고 온 거야?”

목소리는 멀리서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누구였더라. 목소리는 기억이 날 것도 같았다. 하지만 안개가 가린 듯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안개를 걷어내 보려고 우명이 팔을 뻗어 눈앞을 휘저었다.

“우명씨,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형직의 목소리라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 다리 힘이 풀리면서 풀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우명아, 우명아, 우명아!”

누군가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병원이었다.
천장도 벽도 하얀색으로 칠해진 병원의 침대 위에 우명이 누워있었다. 희미한 어머니의 얼굴이 우명의 눈앞에 어른거렸다.

“더러운 년! 내 인생의 마지막 희망을 네가 짓밟았다.”

어머니가 우명의 팔을 힘껏 잡았다간 던지듯 휙, 놓아버렸다.

링거병이 심하게 흔들렸다. 후다닥 형직이 달려들어 링거병을 잡았다. 어머니는 한참 형직을 노려보더니 병실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그제야 모든것이 하나하나 우명의 머리에 떠올랐다.

종아리에 와 닿던 차가운 감촉의 수술대. 수술대는 안락의자에 다리를 벌리고 앉은 자세를 그대로 뒤로 눕혀 놓은 모습이었다.

끈으로 동여매진 팔다리가 답답해서 어렴 풋 옥죄인 몸을 비틀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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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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