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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연재소설 - 간격 7회]

2026-09-25 16:48 | 입력 : 이경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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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인간이 가장 못할 짓이 자식 마음 아프게 하는 일일 것이다.
장수는 돌이 박힌 듯 아픈 가슴을 쓸어내린다. 아들을 낳기 위해 이혼을 한 것은 아니었다. 장수에게 있어 득남은 진명을 사랑한 댓가이며 축복이었다.

그 어떤 신의 존재도 믿지 않던 장수였지만 이 한순간만은 존재하는 모든 신에게 기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자비로움으로 너그러이 보살펴 달라고.
더구나 사랑하는 딸 현주. 그리고 방금 태어난 아들아이. 그 외의 어른들이야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 더불어 산모의 빠른 쾌유를 빌어야지. 장수는 느슨해진 양손을 다시 모아 다시 진심의 기도를 올린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여보, 간호사들 말이 아기가 당신을 쏙 빼 닮았대요. 그게 정말 내 소원이었는데. 소원이 이루어 진 거야.”

진명은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에 스스로 감격해했다. 장수는 멋모르고 좋아하는 진명의 기쁨에 또 가슴이 뭉클해졌다.

기어코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장수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현주 하나만으로 만족하며 살자던 아내 도연과의 약속이 머리를 스친다. 그때의 도연을 기억하면 장수는 마음이 아프다.

진명처럼 저렇게 딱딱한 병실침대에 누워 도연은 말했다.

난 너무 많은걸 바라지 않아요. 우리가 낳은 한 아이만으로도 충분히 신의 축복을 받은 거야. 나는 더 많은 아기를 낳아 그 사랑을 나누는 일은 하지 않겠어요. 난 한 아기만 사랑할래.

도연은 그 날의 그 약속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 것인가. 아이가 겨우 걸음마를 하면서 부터 도연은 바빠졌다.

여보, 엄마가 현주를 봐 주시기로 했어. 다시 직장엘 나갈까봐.

마치 아이가 스스로 걸음걷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첫 돌잔치를 마치고 도연은 흥분된 목소리로 내 입을 막았다. 도연은 결혼 전의 일자리로 휩쓸려 들어갔다.

사랑을 위해 아이를 하나만 고집한 게 아니라 자신의 일을 위해서도 도연은 아이를 더 가질 여유가 없었을 것이었다.
아이를 더 가질 여유만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도연은 자신과 현주의 일 외에는 거의 백지상태였다. 장수아버지의 제사도 어머니생신도 여동생 결혼식준비도... 맏며느리인 자신의 몫을 어머니와 장수가 알아서 해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 현주가 좀 더 자라고 가정이 안정이 되면 나아지리라. 이래저래 불평 불만으로 어머니의 표정이 굳어가긴했지만,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하리라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어머니가 좀 더 기다려주면 되리라.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장수는 알게 되었다.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을. 아내가 없는 불꺼진 집. 아침 식사 후 그대로 하루를 지낸 식탁. 말라붙은 밥풀. 어질러진 침대.

병원서 돌아오는 길에 수없이 드나들어야 했던 놀이방. 지겹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정말 견딜 수 없이 치밀어 오르던 알 수 없는 감정들.

도연을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면서 장수는 참아보려 노력했다. 도연을 사랑했고 도연도 자신을 사랑했기에 장수는 도연을 이해하고 싶었다. 자신이 아니면 누가 도연을 이해하고 배려해 줄 것인가.
하지만 시간들은 그러한 감정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도연은 귀에 익지 않은 목소리에 눈을 뜬다.

“같이 오신 보호자 분은 없으세요?“

네모반듯한 하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꿈을 꾼 것 같았다. 마구 흐느껴 울었던 기억이 나는데 정작 꿈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침대가 너무 딱딱하다는 생각을 한다. 눈을 뜨니 집이 아니었다. 산부인과의 작은 병실. 이제야 왜 여기에 몸을 누이고 있는지 생각이 떠올랐다.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이경희작가 프로필



중앙일보에 장편소설 '제8요일의 남자'를 연재했으며 단편소설로는 '작약' '연의기록' '전생을 기억하는 여자' 등 다수를 발표했다.

제19대 국회의장단 연설문기획관을 지냈으며, 국회도서관 국회보 편집위원, 일간지 문화부기자, 경기도 공무원교육원 겸임교수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JTBC 드라마 '품위있는그녀' 원작소설 1,2와 예술치유 에세이 '마음아 이제 놓아줄게' 등이 있으며, 조선일보 조선 PUB에 문화 칼럼을 연재, 스카이데일리에 ‘초대받은 여자’ 장편소설을 연재했다.

*이경희 작가의 오피니언 ‘전문가의 시선’ 코너에서는
책과 영화, 음악, 드라마 등등의 작품과 더불어 종교와 역사 이야기를 더해 소소한 인생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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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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