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회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 역시, 눈이 무섭구나.”
형직이 일어서서 방석을 접어들고는 우명에게로 걸어왔다. 법당마루는 반들반들 어두움 속에서 맑은 빛을 내고 있었다.
“ 석가의 설법광경을 묘사한 그림이야. 석가가 금강보좌에 앉아서 설법을 하고 그 아래와 옆으로는 보살중과 십대 제자들, 그리고 사천왕과 팔부신상이 앞에 앉아 그 설법을 듣는 그림이지. 배경은 영축산이라고 하는 곳인데 여기 그림에서 표현하는 장소나 수많은 비구와 보살은 실제의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의 모습을 그린 거라고 하더군.”
형직은 방석을 놓고 앉아서 우명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만하면 그릴만 하겠니? 묻고 있는 눈빛이었다.
“내가 혹 그리게 될지도 모를 그 그림 말야. 어느 정도 완성 된 건지 알고 있어?”
형직은 우명의 조심스런 말투에 웃음을 터뜨렸다.
“사 분의 삼정도 되어있다고 하니까 밑그림은 물론 다 되어있는 상태일 거고 채색도 어느 정도는 되어있는 상태 아닐까? 크기는 아마 지금 저 그림하고 비슷할 거야.”
우명은 형직에게 두었던 시선을 거두어 다시 한번 그림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그 그림, 못 봤나 봐?”
“나 같은 사람이 그걸 어떻게 봐. 그림 그릴 사람 말고는 완성되기 전에 다른 누구한테 그 그림을 보이는 일은 없을 거야. 종단의 윗 분 몇몇 말고는.”
어떤 그림인지 먼저 한번 보겠다고 형직을 끌고 올 때부터 자신의 의사가 이미 반은 결정이 된 것이었지만 이야기가 이렇게 진행이 된 만큼 자연스레 그림을 그리겠다는 말을 해야할 분위기 같았다.
이제 와서 어떤 이유를 들먹여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형직에게 전화를 걸 땐 이미 그것을 각오한 상태이기도 하였다.
우명은 생각이 깊어져 자신도 모르게 반질반질한 법당 바닥을 가운데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스스로 빛을 내기라도 하는 듯 광채를 띤 마루바닥은 우명의 움직임에 맞춰 새소리처럼 가볍게 쁘르륵 쁘르륵 소리를 내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말고. 어떤 일이든 자신이 즐거이 해야 하는 거야.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어.”
형직은 우명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서 방석을 집어들었다.
“그분이 그리신 것,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내가 그릴 그 그림 말고 완성된 것. 사찰에서 많이 들 소장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형직이 다시 방석을 놓고 자리에 앉았다.
“그야 당연한 이야기지. 우명씨가 결정하고 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주스님 그림부터 보러 다녀야지. 저 두메산골 첩첩산중에 있다하더라도 내가 법당 앞까지 모시고 갈 테니까 걱정 마.”
우명의 말이 반 승락 이라도 되는 것처럼 형직의 목소리가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형직의 목소리가 법당 안으로 퍼져나가기도 전에 맞은편 끝의 법당 문이 활짝 열리더니 관광객으로 보이는 두 남녀가 들어왔다. 푸른색 조끼를 나란히 입은 걸로 봐서 등산객 같았다. 한 사람은 향불을 피우고 한 사람은 방석을 집어 들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나가자는 듯 형직이 턱짓을 하며 먼저 일어섰다. 우명이 잠시 머뭇대다 입을 열었다.
“해볼 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하지만 형직씨 내가 잘 해낼 지는 모르겠어.”
우명이 겸연쩍은 얼굴로 형직을 올려다보았다. 좀 전까지 머금었던 웃음은 이미 형직의 얼굴에서 지워지고 없었다. 우명의 말을 듣는 순간 형직의 표정은 오히려 굳어졌다.
법당 문을 열고 형직이 우명을 일으켜 세웠다. 법당 밖으로부터 한아름의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우명씨, 너무 잘하려고 애를 쓰면 오히려 힘들어질지도 몰라. 우명씨가 선택한 걸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는 마.”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