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절벅절벅 고인 물을 차올리며 마구 인도로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사람들과 맞부딪치며 어떤 여자가 버스로 뛰어오른다. 여자의 후줄근히 젖은 긴치마 자락이, 버스 계단의 흙을 척척 휘감으며 밀리듯 위로 딸려 올라간다.
우산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빗물에 블라우스의 초롬한 소매가 자꾸만 몸에 감겨들었다. 차가운 감촉에 몸이 떨려왔다. 몸에 감겨든 옷이 신경이 쓰여 우명은 우산대를 잡은 채로 이리저리 팔을 뒤틀며 젖은 블라우스를 몸에서 떼어내려 애를 써보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서 있기를 30분. 우명은 젖은 손으로 핸드폰 화면을 열어보지만 형직의 어떤 흔적도 없었다. 연락도 할 수 없는 어떤 일이 갑자기 생긴 거겠지. 우명은 우산을 접고 버스에 올랐다.
눈을 떴다. 푸름한 새벽 기운이 창 밖을 맴돌고 있었다. 아이보리 색 커튼이 창을 가린 채 늘어서 있었지만 그 사이 새어든 엷은 빛으로 우명은 시간을 가늠한다. 기다렸다는 듯 알람 설정이 되어있는 티브이에 전원이 들어온다.
아침 여섯 시 이 십분. 지난 밤, 감기 약을 먹고 잠을 잔 탓에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우명은 정신이 들었다. 우명은 다시 눈을 감았다.
검정콩과 검정 깨를 식초에 절여서 드시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 중 하납니다. 여자 앵커와 두런두런 말을 주고받는 사람은 분명 한의사일 것이었다. 얼마 전부터 개설된 건강코너엔 매일 아침마다 한의사가 한사람씩 나와서 자기 식의 건강법을 역설하곤 했다. 어제 아침엔 갑자기 코피가 터진 사람들에게 직효 처방을 일러주더니 오늘은 검정콩과 검정 깨를 추천하고 있다. 요즘은 지식인이 너무 많다.
수요일. 우명은 오늘 첫 시간부터 수업이 있다. 첫 시간부터 미술 수업을 하는 것은 효율성 높은 학습이 아니라고 교감이 강조를 했건만 교과시간표를 짜는 교사들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시간표를 짜건 정해진 시간표대로 강의를 하는 것 외에 우명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다. 그 학교의 강의를 그만두는 외에는.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서둘러야하기에 우명은 곧 몸을 일으켜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알람용으로 크게 책정된 티비 볼륨 때문에 찌끈찌끈 머리가 아파왔다. 티브이 소리가 쿵쿵 머릿속을 차고 들어 머릿속이 함께 쿵쾅대고 있었다.
우명은 손을 뻗어 침대 머리맡을 더듬었다. 티브이 리모콘은 바닥에 떨어졌는지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리모콘이 아닌 핸드폰이 손에 잡힌 바로 그 순간, 벨이 울렸다. 우명은 자신이 무얼 잘못 눌러서 나는 소린 줄 알고 깜짝 놀라 황급히 통화종료 버튼을 눌러버렸다. 금세 다시 벨이 울렸다.
“선생님, 저예요. 은석이에요.”
우명은 한숨을 훅, 입 밖으로 쏟아내며 눈을 감은 채 핸드폰으로 목소리를 흘려 넣는다.
“아, 그래은석이. 아직 독서실이야?”
“네 이제 독서실에서 집으로 가는 길이에요. 아침 먹고 학교 가려구요. 어디 아프세요? 선생님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우명은 겨우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앉는다.
“아니야. 아프긴. 너, 피곤하겠구나. 어서 가서 빨리 밥 먹어야지. 학교서 보자.”
“네.”
은석은 느린 대답을 하고도 한참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소리로 만들어지지 않은 은석의 음성이 전화기 너머에 머뭇대고 있음을 알기에 우명은 핸드폰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문고리를 잡고 안을 기웃대는 아이 앞에서 여지없이 문을 닫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명은 저쪽의 침묵이 완전히 정지되기만을 기다리며 무작정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전화가 끊어졌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