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능한 사랑 ' 영화 중 한 장면
이창동 감독의 신작 영화 ‘가능한 사랑’이 해외 영화제에서 잇따라 주목받으며 한국 영화의 새로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 9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가능한 사랑’이 은사자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Grand Jury Prize)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인 관심이 더욱 커졌다.
한국 영화가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기에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이 선정하는 국제비평가상까지 받으면서 작품에 대한 공식 심사위원단과 국제 평단의 평가를 모두 얻었다. FIPRESCI는 ‘가능한 사랑’을 계급과 사회적 격차, 사랑과 연민 등을 여러 층위에서 바라보는 작품으로 평가했다.
‘가능한 사랑’은 이창동 감독이 영화 ‘버닝’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영화다. 이 감독은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 등을 통해 개인의 삶과 사회의 구조가 충돌하는 지점을 꾸준히 탐구해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 관심은 그대로 이어진다.
이 영화에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두 부부가 등장한다. 해고 노동자 호석과 그의 아내 미옥, 그리고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와 그의 남편 상우가 그들이다. 두 부부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계기로 만나게 되고, 서로 다른 삶과 가치관, 감춰져 있던 욕망을 서로 마주하게 된다.
해고 노동자 호석 역은 배우 설경구가 맡았다. 회사의 구조조정과 해고, 노동 현장에서 겪은 경험으로 삶의 균형이 무너진 인물이다. 설경구는 극적인 감정 표현에만 의존하기보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한 인물의 내면을 세밀하게 표현한다.
호석의 아내 미옥은 전도연이 연기한다. 미옥은 남편과 함께 오랜 시간을 살아온 인물이면서도 자신의 삶과 감정을 독립적으로 바라보는 복합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전도연 특유의 절제된 연기는 영화 속 두 부부의 관계를 더욱 팽팽하게 만들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긴강감은 늦추지못하게 만든다.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 역에는 조여정이 출연한다. 예지는 다른 사람의 삶을 카메라에 담는 창작자이지만, 타인의 삶을 기록하는 행위가 과연 어디까지 정당한 것인지 고민하게 되는 인물이다.
예지의 남편 상우 역은 조인성이 맡았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환경에 속한 인물로, 호석과 미옥 부부와는 아주 많이 다른 삶의 조건을 보여준다. 네 인물이 만나면서 영화는 단순한 부부 이야기를 넘어 계층과 노동, 욕망, 창작자의 윤리라는 문제까지 확장된다.
이창동 감독에게 이번 베네치아 수상은 더욱 특별하다. 그는 2002년 영화 ‘오아시스’로 베네치아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데 이어 24년 만에 다시 이 영화제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당시 ‘오아시스’에서는 문소리 역시 신인 배우에게 주어지는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상을 받았다.
이번 작품을 둘러싼 해외의 관심은 베네치아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창동 감독은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트리뷰트 어워즈에서 TIFF 에버트 감독상을 받았으며, 제49회 밀밸리영화제에서는 어터상(Auteur Award) 수상자로 선정됐다. 특히 밀밸리영화제 어터상은 한국 감독으로서는 이창동 감독이 최초 수상자다.
영화제들의 잇따른 초청도 눈에 띈다. ‘가능한 사랑’은 베네치아국제영화제를 비롯해 토론토국제영화제, 뉴욕영화제,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취리히영화제, 밴쿠버국제영화제, BFI 런던영화제 등에 초청됐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도 주요 국제영화제 초청 및 밀밸리영화제 어터상 수상 기록이 올라와 있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164분이다. 제법 긴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거대한 사건을 빠르게 밀어붙이기보다는 네 인물의 관계와 감정이 변화하는 과정을 밀도있게 따라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창동 감독은 현실을 단순하게 설명하기보다 여러 층위에서 복잡하게 바라보고 관객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설명은 그가 영화에서 내건 제목으로 연결되어있다. ‘가능한 사랑’은 결국 서로 다른 삶의 조건과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과연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로 이어진다.
이창동 감독은 베네치아 수상 당시 노동이 사라지고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져 가는 시대에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질문하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는 취지의 수상 소감을 밝혔다.
무게감있는 수상도 중요하지만 관객의 반응이 중요하다는 감독의 말도 작품의 방향을 보여준다. 국제영화제에서 여러 차례 이름을 올리고 트로피를 들어 올렸지만, 결국 영화가 완성되는 지점은 스크린 앞의 관객과 만나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가능한 사랑’은 해외 영화제에서 먼저 작품성을 인정받은 뒤 지금 국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이창동 감독과 설경구, 전도연, 조인성, 조여정이라는 배우들의 만남이 만들어낸 164분의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어떤 질문과 여운을 남길지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가능한 사랑'영화는 국내 영화관 배포는 물론이고 11월 6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