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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연재소설 [길 끝에서 꽃을 줍다 11회]

2026-10-23 02:02 | 입력 :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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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퇴근 안해?”

일어과 강사인 한 선생이 어학실에서 오는지 카세트 테잎을 양손에 가득 들고 들어왔다.

“반 선생, 우리 같은 강사들은 시간당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야. 왜 쓸데없이 어정대는 거야? 과 외의 시간은 무료라구, 무료!”

누군가 들으라는 듯 한 선생은 괜스레 목청을 높였다. 우명은 한 선생에게 목소리를 낮추라는 듯 눈을 찡긋해 보였다. 한 선생은 뭐 어때? 하는 표정으로 어깨를 한번 으쓱 올리더니 좌중을 돌아보았다. 교무실엔 아직 퇴근을 서두르지 않은 열 명 남짓한 선생들이 책상 앞에 남아있었다.

“아참.”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한 선생은 자신의 책상 위에 테잎을 주르르 내려놓고는 서랍에서 신문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이거 못 읽어봤지?”

한 선생은 미리 준비한 듯 읽기 좋게 접혀진 신문의 한쪽을 우명 앞에 내밀었다. 우명은 의아한 표정으로 신문을 받아 들었다. 불교신문이었다.

“반 선생, 저번에 불화 어쩌고 이야기 했었잖아, 왜. 그 이야기 같더라구. 한번 읽어봐.”

우르르 쏟아낸 테잎들을 책상 위에 그대로 둔 채 핸드백에서 썬 글라스를 척 꺼내 들더니 한 선생이 교무실을 나갔다. 우명은 한 선생이 손에 쥐어준 신문을 책상 위에 놓고 의자를 당겨 앉았다.

< 해인사 숙원암 무주스님이 지난 23일 숙원암에서 세수 39세 법납 15세로 입적했다.
혜안스님은 1986년 대구에서 태어나 24세때인 2010년에 숙원암에서 정행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효봉스님을 계사로 비구계와 사미계를 수지한 스님은 관음주력과 
초발심자경문에 의지하여 수행했으며 2012년부터 2023년까지 
전국선원을 돌며 수행 안거했다.
평소 단소를 즐겨 부시던 무주스님은 1994년부터 불화 그리기에만 주력해 
<화엄경변상도> <영산회상도> <신중도> <인로왕도> 
<아미타정토 시방여래칭양도> <약사회상도>등 여러 점이 
전국의 여러 사찰에 보관중이다. 
열반에 드시기 직전까지 열중하시던 <영산회상도>의 마무리는 
무주스님의 뜻에 따라 불교인이 아닌 제3인물에 의해 완성될 예정이다.
열반에 앞서 스님은 
'이와같이 오고 이와같이 감이여 생애는 한순간이로다. 
만리하늘은 한빛이요 청산은 그대로인데도 흰 구름은 흘러간다'
 (如是來如是去兮 生涯刹那間 萬里長天一樣色 靑山不動白雲流)는 임종게를 남겼다.
스님의 영결식은 지난 27일 해인총림장으로 봉행됐으며 
이어 연화대에서 다비식이 엄수됐다.>

우명은 믿기지 않는 듯 책상에 펼쳐진 신문을 집어들고 다시 처음부터 읽어 내렸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                       *                       *                    *                   *

형직이 차를 세웠다.
‘연기암 입구’ 라는 나무 표지판이 서 있었지만 절벽처럼 늘어선 바위 외에 사찰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우명은 잘못 찾아온 게 아닌가 하는 표정으로 형직을 돌아보았다. 우명의 생각을 알아챈 듯 형직이 웃으며 손을 뻗어 앞을 가리켰다. 형직이 가리킨 앞은 여전히 바위벽이었다.

거기서 15미터 정도 걸어올라오니 정말 깍아 지른 커다란 바위를 끼고 오른쪽으로 길이 나 있었다.

“절 이름이 연기암? 어떤 의미지?”

“한글로 보면 이해가 어렵지. 인연 연, 일어날 기, 연기암이야. 인연이 생겨난다는 뜻의”

“인연이 생겨난다? 불교적인 이름이네 정말.”

우명은 형직보다 앞서 오른쪽 모퉁이를 돌았다. 오른쪽 바위벽을 끼고 돌자 거짓말처럼 높다란 계단이 나타났다.

정성스레 다듬은 두 개의 돌사자 상 사이를 선을 그어 가르듯 가파른 계단이 위로 죽 뻗어있었다. 계단은 구름에라도 매달린 것처럼 끝없이 하늘로 솟아 있었다. 하지만 반쯤 올라가기도 전에 계단의 끝과 바로 이어진 듯 죽 늘어선 나무들이 배경처럼 눈에 들어왔다.

풀쩍풀쩍 장애물을 뛰어 넘듯 계단을 오르는 형직을 따라 우명은 숨을 헉헉대면서 절 마당으로 올라섰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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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 |2024.1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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